식당의 기록

[사당 이수역 사계시장] 경성모밀, 줄서서 먹는 냉모밀 맛집 내돈내산 후기

쿠진닷컴 2022. 11. 1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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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집

이수역 사계 시장 구경을 가게 됐다. 평소 그냥 과일이나 신선식품을 구매하려 몇 번 들렸던 시장인데, 시장이 크고 사람만큼 물건도 많아서, 이것저것 구경하는 재미가 있는 곳이다. 햇빛이 따갑던 더운 여름날이었다. 시원한 음식만 입에 넣고싶은 날씨에 장을 보려고 사계시장을 들렸다가 냉모밀 맛집이 시장통에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마침 출출하긴 한데 덥고 뭐 먹을지 생각하기도 귀찮았는데 잘됐다고 생각이 들어서 가보자고 했다.

 

이미 맛집으로 유튜브나 SNS에서 소문이 나 있는 집에다가 더운 여름 냉모밀 집은 안 봐도 줄을 예상 할 수 있었는데, 역시나 앞에 길게 늘어선 줄에 경성모밀집 옆 건어물 가게 앞까지 가릴 정도로 사람들이 줄 서 있었다. 면요리는 회전 속도가 빠르니 기다리면 금방 들어갈 수 있겠다는 계산에 줄의 끝에 서서 좁게 드리워져 그늘을 위안삼아 서 있었는데.. 예상은 빗나갔다. 줄은 더디 줄었고 가만히 서 있어도 한여름 더운 공기가 내 몸에서 땀을 뽑아내 주었다.

 

가게 안은 다행이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어서 '조금만 참자... 조금만..' 생각하며 서 있기를 4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식당 주인의 잘못이 아닌데도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경성모밀이 잘되기 시작한 지도 최소 몇 개월은 지난 거 같았고, 여름에 매일마다 이렇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광경을 목격했을 것이 뻔할 텐데, 그냥 그대로 하염없이 매일 손님을 기다리게 하는 이 집의 시스템이 야속했다. 잘되는 가게들은 흔히 도입하는 번호표 기계라도 들여놓든지, 아니면 수기로 쓰거나 정리한 대기판을 만들든 하면, 10~12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그 땡볕에 쌩으로 서서 기다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주인이 센쓰가 없어도 너무 없구나...라는 생각이 나면서 우리 차례가 가까워 올수록 더욱더 화가 났다. 

 

 

드디어 입장...두두등장

한마디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일단 '내 음식을 서빙해 줄 사람에게 화내지 않아야 한다' 평소 신념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기도 했지만, 예상했던 대로 일하시는 분 모두가 너무 바빴고, 말 걸기 어려울 정도로 바쁘게 서빙하는 모습에 참았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더운 밖에 있다가 내부의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니 내 본능이 여유로워졌던 것 같다. 두고 보자는 맘으로 음식을 시켰다. 냉모밀과 돈가스를 사이드로 시켜서 기다리는데 서빙이 빨리 됐다. 이렇게 바빠도 냉모밀 위에 고명들은 그 자태를 유지하고 있는 모습에서 맛보기 전이지만 맛집이 맞긴 하구나... 생각이 들었다. 보통 잘 되는 집들은 바쁘다고 해서 음식을 대충 내어주는 집은 없었다는 게 내 경험이다. 그 보다 더 잘되는 맛집은 그렇게 바빠도 모든 직원들이 항상 친절했다. 재방문의사를 생각할 때, 이 친절과 음식 일관성 2가지가 지켜지면 망설이지 않게 된다. 

경성모밀 상차림 상 위에 냉모밀 살얼음 육수에 갈은 무 김가루 다진파 고명 돈가스 샐러드가 있다. 파란색 물병
경성모밀 상차림, 상 위에 파란색 물병, 냉모밀엔 살얼음 육수에 갈은 무, 김가루, 다진파 고명, 옆에 돈가스 샐러드가 있다.

맛있었다. 명성과 다른 마케팅의 산물이 넘쳐나는 맛집 업계에 이 집은 근본 없이 마케팅만으로 성공한 집은 아니라고 생각됐다. 단무지도 '유자' 단무지였다. 이 작은 차이점이 너무 좋았다. 평소 냉모밀 맛집을 찾아다닐 정도로 조예가 깊은 편은 아니지만 일반인의 입맛으로 평가할 때 흠잡을 곳 없는 육수에 풍성한 고명에, 각자 조절해서 넣을 수 있도록 만든 고추냉이에서 배려가 보였다. 돈가스도 적당히 튀겨지고 맛없다 느낀 것이 없을 정도로 적당했고 가격도 비싸지 않았다. 이 동네에서 냉모밀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집이 딱 없었는데, 단번에 여기 경성모밀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경성모밀 빨간색 그릇에 담겨 나온 냉모밀 살얼음 육수에 갈은 무 김가루 다진파 고명 돈가스 샐러드가 있다.
경성모밀 빨간색 그릇에 담겨 나온 냉모밀 살얼음 육수에 갈은 무 김가루 다진파 고명 돈가스 샐러드가 있다.

사장님께 한소리 했다.

하지만... 할 얘긴 해야 했다. 감정도 진정됐고, 음식에 대한 불만도 없었다. 하지만 기다리는 손님에 대한 배려는 개선해야만 했다. 줄 서 있을 때만 해도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 기다렸지, 이번만 먹고 다신 이 집 안 온다는 생각이 수십 번 들었다. 너무 덥고 짜증 났다. 결국 기회를 보다가 계산할 때 사장님께 얘기했다. "사장님 번호표라도 들여놓으셔야 될 것 같아요. 이 더운데 땡볕에 40분 기다렸습니다"라고 볼멘소리를 하니 곧바로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다음 여름에 냉모밀이 먹고 싶어 미치겠다 정도 싶을 때 다시 가보고 번호표 없음 안 갈 거다. 이 때는 진짜 그럴 거다. 하필 이런 집 모밀이 맛있다니 ㅎㅎ 어쨌든 다시 먹으러 가긴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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